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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록

포토로그 마이가든




달콤한 나의 도시 영화, 드라마 등등




지현우의 매력에 퐁당퐁당.


"처음뵙겠습니다. 윤태경입니다."

책과는 다른 결말. 그래서 조금 좋았다.
 
고릴라의 결혼에 아파했고, 우연히 만난 연하의 남자와 사랑을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남자와 선을 본다. 하나 하나의 해프닝을 겪고, 한껏 봄날의 사랑으로 꽃피었다 시린 가을바람의 이별로 성숙한다. 31살의 오은수는 그렇게 일상을 살아간다.



2010년 나는 어느덧 스물 여섯이다.
그토록 집착했던 '모순'의 주인공 나이보다 한 살 더 먹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언제나 궁금하다.
30살, 31살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스물 여섯의 내년은 어떻게 펼쳐질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어. :)

12월 Kelly's diary

백조와 학생의 어설펐던 경계선, 그 안에서 찾고자 했던 정체성. 예민함의 극을 달했던 1학기, 세상이 비뚤어져 보였다. 2과목 듣는다며 껄렁하게 다녔던 2학기. 어설픈 신분은 긍정적이던 성격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 스물네 살의 2009년이 간다. 12월 10일 이후부터 자체 송년회를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아듀 2009. 참 즐겁게 놀았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의 송년회는 없다. No more year end.

오늘.
오랜만에 머리를 쓰려니 잘 안돌아가고 깡통소리가 나고, 글도 안 써진다. 절망이다.
읽으려고 빌려왔던 정말 두꺼운 서양철학사는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는데, 2주가 다 지나서 연체료가 붙기 시작했다. 짜증이 밀려온다. 스스로의 나태와 멍청함을 용서할 수 없다. 이럴땐 2PM의 노래 '니가 밉다'가 '내가 밉다'로 바뀐다.

우리조는 다 떨어졌다. 어이가 없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다들 최근에 공부 안한 티가 났다. 난 전날까지 술을 퍼먹었다. 얼굴은 부었다. 그 사람들은 도사인데, 내가 이걸 꼭 하고싶다는 열정이 안 보였던 것을 몰랐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고민은 도대체 왜 한걸까. 쓸데없는 고민, 진작에 개나줬어야 했다. 뭐 어차피 방학때 공부하려 했으니까 미련은 없다. 

신기한 것은 이 잡지의 매력이다. 알수록 애정이 생기려 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곳에 가는 도중, 돌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로 인해 내가 대하는 세상이 조금 달라졌다. 순간의 예의바름으로 누군가에게 '인상깊은 청년'이 될 수도 있고,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가 내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고생의 흔적이 가득한 얼굴의 대면은 알 수 없었던 미움을 '이해와 안타까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경험으로 만족하며, 앞으로 이 잡지의 충실한 독자가 되보려 한다. 
 
어제는 한길이가 "100억원대의 재산가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을 했고, 오늘은 다람언니가 "만약 이 글을 이건희가 읽는다면 공감할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요즘 이런 질문들이 많이 던져졌었는데, 그냥 넘겼다. 생각하는게 귀찮았기에 치열한 고민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내게는 '권력에 대한 경계'와 '한나라당=썩은물' 같은 생각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고민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철옹성같이 믿었던 '약자옹호의 논리'는 6년간 공부한 학문의 영향으로 구축된 '세뇌'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한다. 

#. 사람은 태어났을 때 비워있던 의식세계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채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교육과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비록 세뇌의 결과라 할지라도, 그것이 보수일색이 아닌 진보임에 다행이다. 정의, 인권, 민주주의와 약자를 말하고 주목할 수 있음에 께어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러 생각과 글과 경험들로 참 많이 흔들렸다. 그랬기에. 쏟아지는 반대 질문과 현실의 유리벽과 내 반박논리의 빈궁함을 느끼면서 작아졌다. 그 때에 멍청이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순간 철저히 마주해야 했던 것은 반박논리가 떠오르지 않는 무지였다. 아 이런. OTL. 이래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상황을 전하고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꾸는가.였다. 그럴 때 마다 작아졌고 좌절은 내재되어 갔다. 웃지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더 이상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 내재된 좌절을 깨부시는 길은 지식을 쌓고 일관된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오기이자 희망과 바람이다. 귀찮음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근성, 무지와 맞서 싸울 머리, 배우고 배워 쏟아내는 글발이 필요하다. 사실 그게 살 빼는 것보다 더 어려워보인다. 그러나 '해야한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 낙숫물에 파이지 않는 돌 없고, 나무뿌리에 틈을 열지 않는 바위없다. 

#. "창의성은 화려한 건물이나 으리으리한 쇼핑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읽고, 듣고, 주장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 에서 나온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내게 주는 위로 하나.

#. When I look into the future, it's so bright it burns my eyes.
미래를 바라보았다.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 없었다.


힘내 :P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소통

속상하다. 
정부, 언론, 사측의 전방위 압력에 결국 항복한 철도 '노동자들'.

'왜' 노조가 파업하는지에 대한 '원인 보도'보다, 파업했으니 '모두에게 죽을 죄를 짓고있다'는 언론이 연일 쏟아내는 이 비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파업의 불편을 조금 견대내는 '인내'보다, '그래, 이 노조 나쁜 새끼들'이란 생각을 하는 것이 답답하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언론이 더 나쁘다. 대통령은 강경발언으로 여론을 몰아간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미국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면, 한국은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로 표현할 수 있다.

1984를 통해 내가 볼 수 있었던 희망은 '한국의 특이한 국민성'이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크고, 정치에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작은 변화의 씨앗이 요즘은 안 보이는 곳에서 조근조근 밟히기도 하고, 보이는 곳에서 대놓고 밟히기도 한다. 그렇게 밟으면 우리도 '폭발'한다.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왜 그 사실을 잊고 이토록 밀어붙이는 걸까. 이런 '항복' 때문에?
 


구빈원, 그 남자에 대한 답

조지오웰의 산문 '코끼리를 쏘다'

박경서씨가 오웰의 여러 산문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는데, 그 중 대표작 이름을 책 제목으로 뽑아 놓은 것이다.

그 안에 '구빈원'이란 제목의 산문도 있었다. 이 글을 읽고나서 내겐 슬픈 물음표 하나가 생겼다. 어떻게 반박하고 싶지만, 무슨 말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슬픔이랄까.. 그 때와 지금의 본질적인 현상들은 별로 다를 것 없다. 역사순환설은 이런 점에서 잘 들어 맞는다고 생각한다. 

조지오웰이 구빈원에서 만난 한 남자는, 잘 살던 중 위기를 맞아 구빈원생활을 하게 된다. 딱딱한 침대생활, 배고픔이 연속인 나날을 보내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에게 현실이 아니다. 구빈원 침대가 좀 더 푹신하면 좋지 않겠냐는 오웰의 말에 그는 '이런 거지들에게 베풀면 안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가 마주한 당장의 현실이 '거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과 이곳을 곧 벗어나리라는 희망 역시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변화의 싹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 이상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수당을 뽑는 사람들 대다수가 '서민'이라는 점이 떠올랐다. 왜일까? 서민들이 '이 남자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에'가 답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런 대다수의 서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이것을 어떻게 풍자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지 한계를 느낀 적이 있다. 그러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 글이 던져준 고민은 이내 잊혀졌다.

올해 초에 읽은 책인데, 오늘에서야.. 홍세화 칼럼이 나를 구제했다. 고민하던 머리를 '땅' 치게 만든다. 감탄을 연발하게 만든 그의 글을 통해 배우고 또 배운다. 



가령 한국의 수많은 상가 세입자들은 용산참사를 자기 일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오늘의 처지로 사회 현실을 바라보기보다 돈 많이 버는 데 성공한, 장래의 눈으로 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게 만만치 않게 작용한다.

로또 복권을 사는 사람들 모두 자기가 당첨되는 꿈을 꾸고 당첨되었을 때의 자기 모습에 도취해 힘겨운 오늘을 잊듯이, 오늘은 가난한 상가 세입자의 처지이지만 장래에는 모두 성공한 사업가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을 통하여 오늘의 나를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모두 '루저'>




 


CEO와 대통령 소통

 화제의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미실'이 21세기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 였다면? 아마 그녀는 삼성, LG, 현대에 뒤지지 않을 대기업 CEO가 돼 있었을 것이다. 하늘을 이용하기 위해 책력을 쟁취하고, 백성들에게 자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마케팅하는 모습은 경제학적 시각으로 볼 때 꽤 효과적인 방법이다. 선덕여왕이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면, 미실은 그 '희망'을 이용하려 든다.

그래서 백성들의 민심을 듣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형평'을 지향하는 선덕여왕은 '정치인'이고, 희망보다 당장의 삶을 바라보고 '효율'과 '이윤'을 추구하는 미실은 '경제인'인 것이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이윤보다  '명분'을 내세우지만, 경제적 의사결정은 명분보다 '합리성, 이윤'을 더 중요시 한다. 이것이 CEO와 대통령의 차이다. 

당장 우리나라가 통일된다고 하면, 정치인과 경제인이 내놓는 대책이 다를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청계천 사업이 시작될 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상가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1,000번 이상을 만났다. '주민 동의'라는 명분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앞에 '국민적 동의'라는 명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질개선, 경기부양' 이라는 효율을 앞세운 문구만 모습을 드러낸다.

촛불시위를 겪고도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해 광우병 쇠고기 시위가 일어난 것은 '국민건강권'이라는 명분보다 미국과의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윤'을 우선시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세종시 수정론 접근 방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청와대의 '효율성'이 정치인 박근혜가 내세우는 원칙과 신뢰라는 '대의 명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대통령도 대통령이다. 국민의 희망 위에 세워진 상징적인 정치인이 바로 대통령인 것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기업가가 아닌 정치인임을 자각해야 한다. 진나라의 진시황은 법가(法家)를 내세우며, 기존에 나라를 지배하던 사상인 유가(儒家)를 전면 부정했다. 당시 진시황에게 분서갱유를 일으킬 명분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모든 것을 불태웠다. 결국 진은 건국 14년 후 역사 속으로 나라가 사라졌다. 정치에서 명분이란 이처럼 중요하다. 뛰어난 기업가 성향을 지닌 '미실'의 쿠데타 실패가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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